[예수님의 질문과 나의 대답 -에필로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Author
Buena Park Church
Date
2022-06-07 02:50
Views
822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 16 : 13-20절

오늘 본문 말씀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질문을, 질문 시리즈 마지막 설교로 남겨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범답안”을 좋아하기 때문 입니다.
나에게는 참된 경험과 실제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모범 답안을 갖고 있으면 안심이 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는 답이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질문과 나의 대답 간의 간격에 대하여 좀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나를 성찰 하는 시간이 필요 했기 때문 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물을 때 베드로의 고백은 하나의 ‘모범 답안’이 되었습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에 질문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① 세례자 요한 ② 엘리야 ③ 예레미야나 선지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한다는 여론조사 발표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3-15절)

예수님의 갑작스런 질문에 시몬 베드로는 자기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그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 (헬-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구원자, 히브리어- 메시아 ) 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이러한 고백은 예수님을 그 동안 가까이 따랐고 직접 경험했던 베드로의 개인적인 고백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고백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물으시는 공동체적인 질문 입니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누구라고 고백 하시는 지요? 나에게 있어서,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요? 내가 체험하고 내가 인격적으로 아는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경험한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 : 19)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아는 교리나 지식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사탄도 이런 교리나 지식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더 모르고 있다고 착각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관한 모든 말씀 기록들을 잘 알고 설령 암송 하고 있을지라도 , 그것이 오늘 나의 삶에 살아 있지 않다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지요 ?

“기독론” (예수그리스도는 누구신가?) 라는 질문 앞에 지난 2천년동안 많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신학적 논쟁,교회 분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남,희생됨)

서양의 철학과 신학은 그 주체인 헬레니즘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서양신학의 양대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 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각각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깊고 방대한 철학세계에 기독교라는 특이성을 더하여 정립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철학은, 그 철학이 형성된 문화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만들어 진다는 사실 입니다.

헬라 철학은 지식과 실제 삶에 대해 , 또 마음(mind) 과 몸(body)에 대해 뿌리 깊은 이원론적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헬레니즘에 기반을 둔 서양문화는 오늘날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며, 현대인의 언어와 생각, 개념 체계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심 해야 할 것은 그러한 영향력을 분별하고, 이 시대의 지배적인 철학과 언어와 세계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된 배경이 된 유대인의 사고 방식과 세계관은 이원론적인 헬라인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과는 크게 다릅니다. 성경적 세계관이란? “알아 가는 것” 과 “살아 가는 것” 이 분리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삶을 통해 실천할 때에만 더 잘 알아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 입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영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의 분리도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영적인 것이란? 가장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영적 예배” (롬 12 : 1) 라고 힘주어 말했던 것입니다.

제가 잠시 평소에 별로 인용하지 않던 서양철학과 세계관에 대한 언급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질문에 이런 헬레니즘적 세계관의 영향으로 답을 하지 말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인용된 것임을 밝힙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 우리가 답을 해야 합니다. 아니 나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 1: 1,14절)
이러한 말씀을 자칫 이분적으로 해석하면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몸만 인간이 되신 분처럼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 분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고 힘주어 강조하며 해석하려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매우 경건해 보이는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두 가지 심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① 예수님을 우리와 같이 만들어 버림으로써 예수님의 가치를 떨어뜨리면 안 될 것 같기 때문 입니다.
② 그분이 근본적으로 우리와 같으셨다면 우리가 예수님 처럼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가 없어지기 때문 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라고 알려 줍니다. 즉 에수님은 우리와 아주 같아지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돌아가실 수 있었고,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실 수 있었습니다. 아니, 우리보다 더 낮아지셨기에 하나님은 그분을 모든 이름위에 더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셨고, 그분은 우리를 모두 섬길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용모는 ? 시중에 나온 예수님의 초상화는 잘못된 것이 많습니다. 이사야 53 : 2-4절을 보면 “풍채도 없은 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의 직업은 ? “마리아의 아들 목수” (막 6 : 3)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일찍 돌아가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에는 더이상 기록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고 봅니다. 최소한 9명의 식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형제 중에 맏이 였습니다. 제가 묵상한 바에 의하면 예수님은 가난이 무엇인지 ? 병이 얼마나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지? 먹고 사는 문제가 월세 내며 사는 심정이 얼마나 힘드는지에 대한 모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먼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눅 9 : 28)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모든 유혹과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명예와 힘 권력과 부와 성적인 유혹까지도 우리와 똑같이 체험하고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 이라고 부를 때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막 10 : 18 )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선언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답하느냐 입니다.
①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8 : 12)
②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요 15 : 5)
③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 (요 6 : 51)
④ 나는 양의 문이다 (요 10 : 7)
⑤ 나는 선한 목자다 (요 10 : 11)
⑥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 : 6)
⑦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1 : 25)

이 한마디 한 마디를 우리는 묵상하며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내가 이 땅위에서 사는 날 동안에 항상 묵상하며 천천히 대답해 보았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포장해 놓았던 모범 답안지에 나온 대답이 아닌 내가 인격적으로 만난 예수님에 대하여 날마다 고백하는 심정으로 그분의 십자가의 사랑을 마음속 깊은 곳에 담고서 오늘이라는 또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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